요도호 납치 사건

사회 / / 2021. 3. 29. 07:40

비행 중인 비행기

1970년 3월 31일 오전 7시 33분.

도코 하네다 공항을 출발하여 후쿠오카 이타즈케 공항 행 일본항공 351편이 후지산 상공을 비행하던 중 일본도와 권총, 폭탄을 지닌 괴한에게 납치 당합니다. 범인들은 남성객을 창가로 이동 시킨 후 로프로 묶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북한의 수도인 평양이었습니다. 

범인은 무기로 위협하며 소리칩니다. 

"당장 평양으로 이동해" 

 

기장은 침착한 목소리로 대응했습니다.

"죄송하지만 북한에 가기에는 연료가 부족합니다." 

 

실제로는 예비 연료가 있어 충분히 북한까지 이동이 가능했지만 기장의 기지가 빛을 발했습니다, 

납치된 항공기는 오전 8시 59분에 기름을 공급받기 위해 이타즈케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경찰은 국외 도주를 막기 위해 항공 자위대 항공기로 활주로를 막았습니다.

 

이와 같은 행동은 범인을 더 자극했고, 서둘러 이륙을 명했습니다. 

이륙 전, 기장은 범인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납치되도 상관이 없지만 어린이와 여성, 노약자는 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비행기가 뜰 겁니다."

범인들은 고민 끝에 여성, 어린이, 환자, 고령자 23명을 풀어줬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날 평범한 일상의 감사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후 1시 59분.

요도호는 이타즈케 공항을 이륙했습니다.

기장이 후쿠오카에서 받은 지도는 학생용이라 간단한 정보만 나와있었습니다.

이 지도 구석에는 '121.5 MC'를 감청하라고 쓰여져 있어 기장은 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

 

'휘이잉' 

급박한 항공기 안과 달리 하늘은 평화롭기만 했습니다.

요도호는 한반도 동쪽을 북상하며 오후 2시 40분에 진로를 서쪽으로 변경했습니다.

그 직후 요도호의 오른쪽에 국적을 숨긴 전투기가 나타나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내립니다.

하강 지시였습니다.

 

그 시점 요도호는 북위 38도선을 넘었지만 아직은 한국 영공에 있는 상태였습니다.

전술한 바로 미뤄볼 때 요도호는 당시 강원도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JAL편. 평양 응답하라.

"여기는 평양이며 진입 관제를 실시한다"

 

해당 무선은 주파수를 134.1 MC로 바꿀 것을 지시한 다음 왼쪽을 선회하여 북위 38도선을 넘어 남하를 유도했습니다.

북한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한국 당국의 지시였습니다.

범인들은 조선어와 영어를 몰랐기에 자신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몰랐습니다. 

 

오후 3시 16분.

대한민국 국군은 조선인민군 병사 복장을 하고 "평양 도착 환영"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지만 한 가지 놓친 사실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 항공기였습니다.

 

김포 공항 내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의 여객기가 주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해 여기가 평양이 아닌 서울임을 알게 된 겁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범인은 비행기에 접근해 온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기가 평양이 맞는가?"

그 사람은 평양이라고 했지만 북한의 천리마 운동에 대해 묻자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수상함을 느낀 범인은 김일성 사진을 가져오라고 하지만 바로 보여주지 못해 전략을 간파당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범인은 새로운 대치 사항에 놓였습니다.

 

4월 1일. 

야마무라 신지로 운수성 정무 차관을 포함한 일본 정부 관계자와 일본 항공 직원이 특별편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합니다, 정래혁 국방부 장관, 백선엽 교통부 장관과 함께 적군파(일본 적군파/ 비행기 납치범)와 대치하게 됩니다.

 

범인이 한눈 판 사이 요도호 부조종사가 무전으로 범인의 수와 위치를 외부에 알렸습니다.

한국은 특수부대 진압을 검토했지만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소비에트 연방과 국제 적십자사를 통해 요도 호가 북한으로 향했을 때 보호해달라고 북한에 요청했습니다.

이에 북한은 '인도주의에 근거해 승무원 및 승객은 즉시 돌려보내겠다'라고 답했습니다,

 

일본측은 범인들이 승객, 승무원을 풀어줄 경우 북한으로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한국측에 요청했습니다.

한국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긴 대치 끝에 교섭을 실시한 야마무라 신지로 운수 차관이 승객 대신 인질이 되는 것으로 합의를 했습니다,

차관이 비행기에 탑승하는 동안 승객을 풀어줬으며 마지막 승객 1명이 트랩상에서 바뀌는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풀려난 사람들은 일본 항공 소속의 히다 호를 타고 귀국했습니다. 

 

4월 3일 오후 6시 5분. 

요도 호는 김포국제공항을 이륙한 후 휴전선을 넘어 북한 영공에 들어갔습니다. 

북한 영공이지만 북한군의 아무런 지시가 없었습니다. 

 

기장은 태평양 전쟁 중에 야간 특공대 교관 경험을 살려 작은 활주로를 육안으로 발견했습니다. 

오후 7시 21분에 북한 영토에 착륙하게 됩니다. 

이 활주로는 평양 교외에 있는 미림비행장 철거지였습니다. 

 

북한은 범인에게 무장 해체를 먼저 요구했습니다. 

무기를 비행기 밖으로 버렸는데 해당 무기들은 모두 장난감이나 모조품이었습니다. 

범인 9명과 승무원 3명, 야마무라 차관은 북한측에 넘어가게 됩니다. 

 

4월 4일. 

북한은 비행기 납치범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을 일본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발표합니다.

비행기 납치범의 망명을 받아들인 겁니다. 

 

범인들은 북한 망명 후 세계 혁명을 위해 자신들의 군사 훈련을 요구하지만 북한은 이를 거절합니다.

북에 거주하며 주체 사상을 받아들였는데 이들이 주체사상으로 전향해 가는 과정은 "우리 사상의 혁명"이라는 책으로 탄생하여 주체사상을 지지하는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범인들의 이야기는 추후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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